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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랍존 커맨더] 단편 소설 - 모두 불태워버려!

ksodien 2016. 7. 2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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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도 7월 1일자의 공식 개발사 소식지에 실려있던 단편 소설의 내용을 번역한 것으로, 다소 의역의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D

 

 

†        †        †  

 

 

Everything burns! (모두 불태워버려!)

 

 

 

 

“아브락시스, 이번의 일제 사격으로 인한 전적(戰績)은?”


 “68개체입니다, 주인님.”


카이우스의 의식은 신경망 접속 장치를 통하여, ‘Menchit’ 보행형 기갑 병기의 조종석에 결속된 채 휴면 상태에 빠진 자신의 육체 위를 고요히 부유하고 있었다.

 


모든 조종 체계는 원활히 기능 중이였으며, 아브락시스-그의 개인용 인공지능- 역시 사냥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끝난 채 그의 다음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생각에는 우리가 조금 더 나은 결과를 낼 수도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 자, 어서 이동 경로가 표시된 고감도 전장 중계 영상을 띄워봐.”

 

이내 탐구심으로 가득한 그의 의식이 사고의 덩굴손을 뻗치자, 곧 카이우스는 180도 시야각의 광학ㆍ전자기 계열 다중 화상판독장치를 지닌 6미터 전고의 보행 기갑 병기 그 자체가 되어 엉망진창으로 부서진 도심 상업 지구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록 전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먼지와 연무(煙霧, smog)의 방해 요소에도 불구하고 그 화질은 놀라우리만치 선명했으며, 그 너머로 보이는 거리의 모든 것은 그저 정지된 채 어두운 회색의 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회색으로 가득차있던 전장 중계 영상의 한 지점이 환한 청색의 빛으로 밝혀지며 일련의 이동 경로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스커지… 우주의 모든 것을 삼키는 포식자들.


지난날 황금기의 시대를 구가하던 인류의 태양계와 그 주변의 주요 개척 행성들을 일순간의 침공으로 빼앗아간 플라즈마 생체 병기 기반의 간악한 기생 외계종에 감염된, 한때 인간이었을 가련한 병사들의 육체가 도심 곳곳의 무수한 엄폐물 속을 빠른 속도로 넘나들며 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가만히 멈춰서 있는 이 기체가 쉬운 먹잇감으로 보였던 것일테지…’

 

 

“아브락시스, 3연장 기관포의 조종간을 정신 감응 모드로 설정 후 실시간 사살 기록 산출에 들어가도록. 우선은 총구를 약간 올리고, 우측 상단… 발사!”


그의 의식은 곧 적들을 향해 몰아치는 탄환의 비가 되어 정조준된 된 사선상의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향해 불꽃을 토해내기 시작했고, 이내 전장 중계 영상의 HUD 상에서 각각의 적 병사들을 나타내던 청색의 흐릿한 형상들은 속속 청색의 얼룩 덩어리를 거쳐 이제 더이상은 움직이지 않는 회색의 녹아내린 잔해로 바뀌어갔다.

 

그와 동시에, 그의 시야 오른쪽에 표시된 사살 기록의 수치가 빠른 속도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 19, 20, 21, 22, 23, 24….. >

 

“주인님, 이 것은 RX-20 3연장 기관포의 잠재적 살상력을 극대화함에 있어 비효율적인 방법입니다. ”


그리고 인공지능 아브락시스의 어조가 사뭇 책망의 빛을 띄기 시작하던 그 찰나…

 


<사살 기록 25, 25…>

 

“이런 젠장, 방금 한발이 빗나가버렸잖아. 너 내 조준장치 껐냐.”


 “사과드립니다. 주인님. 하지만 이는 부득불한 조치로…”

 


 “아, 뭐 내가 상황을 망치고 있었다는 점은 이해했어. 자아, 그럼 총열 전속 회전. 대량 살상 모드로 설정! “

 

카이우스가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그의 정신 감응 장치와 연동된 3연장 기관포의 화기 통제 체계가 서서히 자동 조준 모드로 전환되었다.

 

곧이어 총구의 회전 속도가 점차 올라가며 그의 보행 기갑 병기는 치명적인 죽음의 비를 좌우로 흩뿌리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청색의 흐릿한 형상 -한때 스커지의 숙주로서 고통받던 병사들의 육신- 은 완전히 말소되었다.

 


물론 즉각 엄폐물을 찾아 숨어든 자들도 있었지만, 결국 산산조각난 건물의 파편들과 함께 솟아오르는 살덩어리의 조각들이 되었을 뿐.


심지어 탁트인 개활지에서 포착당한 적들의 최후는 더욱 처참하여, 몸뚱이는 터져나가고 이내 붉은색의 안개로 화하며 단지 증발해갈 따름이었다.

 


 “잠재적 위험 요소 갱신 완료. 서쪽 방면에서 접근 중입니다. 저의 주인이시여, 외람되오나 이는 미식별 상태의 적대적 요소인바, 보다 신중한 행동 방침을 위해 판테온 정보 저장소로의 접속을 권장합니다.”


 “하아…? 이봐, 아브락시스. 나의 첫번째 원칙이 뭐라고 했었지?”

 

“하지만 최근 보고된 상기 적대적 요소와의 교전 기록에 따르면, 심지어 상당한 대보병 살상 능력을 지닌 RX-666 화염 방사기의 화력으로도 충분한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고…”

 


“그러니까, 내 첫번째 원칙이 뭐라고 했지?”

 

“모두 불태워버려! 입니다. 주인님.”


“모두 불태워버려! 아브락시스”

 

곧이어 일반인의 족히 3배에 달하는 덩치의, 불길하리만치 거대한 형체들의 움직임이 다중 화상판독장치를 거친 고감도 전장 중계 화면상에 나타나자 카이우스는 순간 자신의 정신이 압도당함을 느꼈다.

 

‘침착해라, 카이우스. 저 녀석들은 그냥 헤비 풋볼 선수마냥 덩치가 큰 것 뿐이라고. 뭐 어때? 다 불태워버리면 그만이지!'


“재장전 완료. 기관포로 집중사격하면서 적들이 화염방사기의 유효 사거리 절반 내로 들어올 때까지 대기. 어디 올테면 한번 와보라지”

 

 

그 순간, 또다른 이변이 일어났다.

 

분명 신경망 접속 상의 전장 중계 화면이 어두운 무채색의 광학적 여과층으로 뒤덮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멀리서 달려오는 괴물들의 팔 부분, 정확하게는 그 팔에 달린 대포의 화구로부터 확연히 식별가능하리만치의 은은한 푸른색의 빛으로 응집되어가는 그 무엇인가를 마침내 카이우스는 발견하고 만 것이었다.


그 각기 3개의 눈을 가진 3마리의 괴물들은 흡사 카이우스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라도 한 듯이, 즉각 그들의 과격한 돌진을 멈추었으며, 이내 눈 앞의 먹잇감이 나름 먹음직스럽다는 사실을 깨닫고 각자의 송곳니로부터 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들은 울부짖으며 카이우스의 보행 기갑 병기를 향해 돌격해왔고, 그 이동 경로 상에 놓인 스커지 병사들의 유해를 짓밟고 밀쳐냈다.

 

‘흥, 이 따위 짐승들쯤이야 별 것 아니지…! ‘

 

 

“충격 완충 장치 활성화, 완전 자동 모드로, 자, 이제 한번 날아보자고! 화염방사기의 연료가 다 비워질때까지!!! “

 

카이우스가 으르렁거렸다.

 

 

“저들에게 RX-666 화염 방사기의 맛을 보여주자. 전부 태워버려!!”

 

 

 

 

 

 
액상 화염의 분출물이 카이우스의 기체로부터 길게 뻗어나가, 그 앞의 야수들을 불꽃과 과열된 연료의 격류로 휘감았다.


우렁찬 군가는 이내 고통에 몸부림치는 병사와 비탄의 흐느낌으로, 갑주는 갈라진 채 산산조각난 파편으로, 가증스러운 외계인의 육신은 그들의 껍질 안에서 검게 타고 푹 익혀지리라.

 

 

“모두 불태워버려! 아브락시스”

 

그가 일으킨 파괴의 명멸하는 빛 한복판에서, 카이우스는 다시금 미소지었다.

 

 

“이제 화염이 꺼지기를 기다리면서 이번 전투에 대한 보고서를 슬슬 써볼까나? 아, 저녀석들은 덩치에 비해 정말 약한 편인걸. 뭐 어떠한 의미에서든 판테온 정보 저장소의 기록이 갱신 되어야 할 필요는 있겠지만 말이야.”

 

“주인님, 감지 장치에 무엇인가…”

 

인공지능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점차 사그라들던 화염이 푸른색의 빛과 함께 돌연 터져나가며 응축된 플라즈마의 포격이 ‘Menchit’ 보행형 기갑 병기의 오른쪽 동체에 적중하자, 이내 성난 듯이 점멸하는 붉은색 경광등과 어느순간 녹아내린 화염방사기의 잔해가 카이우스의 시야를 교차했다.

 

 


“아브락시스, 피해 보고!”

 

“저어어어어어언부 불태워버려! 주우우인니니임임”

 

“아브락시스! “

 

 

카이우스는 신경 접속망 내의 가상 공간 곳곳을 뒤덮어나가는 피해 보고서 창에 손을 뻗으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 -  ‘Menchit’ 급 제1형 보행 기갑 병기 피해 현황 보고- ]


- RX-666 화염방사기: 기능정지.
- 동체 균형 유지 장치: 기능정지.
-  보조 운영 체계: 복구 시도 중. 실패.
- 주 인공지능 핵심부: 심각한 손상.
- 주 자동 제어장치: 기능정지.
- 예비용 부속: 기능정지. 자동 제어 실패.

 

 

어쨌든 붉은색 경광등의 틈 사이로 분출되는 연기와 쉴새 없이 울려퍼지는 경고음이 무심하게도, 카이우스는 자신이 아직 상업 지구의 한복판에 남겨져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고열의 충격으로 산산조각난 콘크리트와 녹아내린 금속들의 파편. 그리고 점차 약해지는 불꽃의 저 너머로 보이는, 이러한 대파괴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여전히 움직이는 그 불길한 무엇인가의 존재….

 

 

카이우스는 흡사 믿기지 않는듯한 표정으로 정신 감응 장치로의 접속을 재차 시도했다.

 

“저녀석들 여전히 살아있잖아! 아브락시스, 저녀석들이 대체 어떻게 살아남은거지? 응답해! “

 

“모오오…두두우… ---모 모두-우… 불태워 불태워불태워버려려려 – 모두 불태워버려! 주인인인인니임임임”

 

 

두마리의 야수들이 서서히 잦아드는 불꽃의 가장자리에서 일어나, 다시금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한마리는 모든 눈을 잃은 상태로, 그 깨지고 불타버린 눈에서 피를 흘리며 검고 두꺼운 혀를 입 밖으로 길게 빼어문 채 마치 자신의 적을 탐색하기라도 하듯 전장의 표면을 따라 실려오는 공기의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다른 한마리는 하나의 눈을 잃었으나, 대신 아직 남은 2개의 붉은 보석과도 같은 눈에서 맹렬한 안광을 폭사시키며 폭발의 여파로 온통 숯칠이 되어버린 신체의 절반과 코 그리고 푹 익어버린 힘줄과 근육의 섬유 다발 끝에 간신히 매달린 왼쪽팔을 질질 끌며 다가오는 중이었다.

 

 

일순간, 두번째의 야수를 바라보던 카이우스의 동공이 커졌다. 절망스럽게도 그 야수의 오른팔은 아직 무사하여, 끔찍한 청백색의 빛이 응집되고 있었다!

 

이윽고 분출된 플라즈마의 화구 앞에서, ‘Menchit’ 보행 기갑 병기는 정말로 한순간에 허리 부분의 절반 가량이 깔끔하게 도려져나간 채 뒤로 넘어졌다.

 

이어서 카이우스의 의식은 뿌옇게 흐려졌고, 전뇌 공간으로의 접속마저 불안정해진 상태로 간신히 붉게 빛나는 경고 표지가 도처에 널려있음을 확인 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치명적인 손상 보고가, 기체의 모든 구동 체계에 걸쳐 표시되고 있었다.

 

“모두 태워버려! 주인님 태워버려! 주인님 태워버려!-“


< -아브락시스, 심각히 손상됨. 논리 연산 중 고착화 ->

 

 

카이우스는 다급히 접속 해제를 서둘렀다. 만약 그의 정신 감응 연결 장치가 활성화된 상태로 ‘Menchit’ 보행 기갑 병기가 기능 정지 되어버린다면, 그는 운영 체계가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탈출을 위한 안전 장치를 가동하지 못해 끝내 죽음을 맞이 하게 될테니까.

 

이윽고 비상용 강제 접속 해제 절차와 그에 수반하는 몇초간의 시계 암전 현상을 거쳐, 그는 마침내 자신의 의식이 본래의 육신으로 무사히 복귀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카이우스가 첫번째로 느낀 것은 바로 고통이었다. 그의 통각을 따라 넘쳐흐르는 신체 곳 곳의 격통은 순식간에 그의 정신을 압도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비상시를 대비한 각성제조차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정도였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오른쪽 다리는 소실. 나머지 왼쪽의 다리 부분은 녹아내린 금속과 살덩어리가 뒤섞인 채 거품으로 부글 부글 끓어오르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 다음으로 그가 느낀 것은, 바로 냄새였다.


산패(酸敗)한 고깃덩어리, 불타는 기름과 녹아내린 플라스틱 조각들이 만들어내는 화재의 매캐한 악취에 카이우스는 순간 약간의 어지러움과 함께 욕지기가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필시, 앞선 피격의 여파로 대파된 그의 ‘Menchit’ 보행 기갑 병기와 그 자신의 육신이 하나로 용해되어버린 것일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본 것은 자신의 얼굴 위로 방울진 채 하나 둘 떨어져 내리는 검은색 타르의 침덩어리들과, 지휘석 바로 위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진홍색 눈동자의 굶주린 포효성이었다.

 

 

“모두 불태워버려! 주인님… ”

 

 

†        †        † 

 

 

 

 

 

‘Menchit’ 급 제1형 보행 기갑 병기는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전쟁의 신으로부터 그 명칭을 차용한 약 6미터 전고의 기체로 뛰어난 대보병 제압 능력을 지닌 RX-20 3연장 기관포와 RX-666 화염방사기를 장착한 채 신인류 공화국군의 선봉대로 투입되며, 그 모든 살상 능력이 대 보병에 집중되어 있기에 본대의 전투 공역 진입 이전에 한발 앞서 도심의 폐허 속으로 침투 한 후 곳 곳에 은ㆍ엄폐하고 있을지 모를 적군의 병사들을 빠르게 제압함으로써 향후의 공방전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주 역할입니다.

 

따라서 대기갑 능력은 전무하다고 할 수 있는 편인데... 하필이면 이번의 상대가 온몸에 중장갑을 두른 수준의 거대 괴수라 처참하게 당하고 말았네요.

 

한편으로는 나름 전신 의체에, 고도로 발전된 전뇌 연결망까지 갖춘 신인류가 알고보니 이렇게나 허당[...]이었다는 점에 왠지 허탈감을 느끼기도 했답니다;;; (분명 더 작은 소형의 정찰 보행 병기 조종사로부터 한단계씩 승급하는 구조인데... 설마 Pow낙하산er인거냐!! ;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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