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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odien의 망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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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워하운드 타이탄] (원작:황순원의 '학') -패러디

ksodien 2011. 1. 22.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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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출처: http://browse.deviantart.com/?qh=&section=&q=titan#/doy9pf


제국 변경의 이 북쪽 마을은 드높이 개인 가을하늘 아래 한껏 고즈넉했다.

반역자들이 빠져나간 정수장 근처에는 빈 수통만이 빈 수통만을 의지하고 굴러 있었다.

어쩌다 만나는 늙은이는 황제에 대한 기도부터 올렸다. 아이들은 또 아이들대로 멀찌감치서 미리 길을 비켰다. 모두 겁에 질린 얼굴들이었다.

 

동네 전체로는 이번 동란에 깨어진 자국이라곤 별로 없었다. 그러나 어쩐지 자기가 어려서 자란 옛 마을은 아닌 성싶었다.

뒷산의 차량 정비창 앞에서 성삼이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방치된 장갑차의 상부로 기어올랐다. 귓속 멀리서, 요놈의 자식들이 또 군용 장갑차 위에 올라가는구나, 하는 혹부리 중위님의 고함소리가 들려 왔다.

그 혹부리 중위님도 그새 세상을 떠났는가, 몇 사람 만난 동네 늙은이 가운데 뵈지 않았다. 성삼이는 장갑차 위에 누운 채 잠시 푸른 가을하늘을 치어다 보았다. 흔들지도 않은 장갑차의 차체에서 몇 개의 장갑판들이 저 혼자 아람이 벌어져 떨어져 내렸다.

 

임시 근위대 사무소로 쓰고 있는 집 앞에 이르니, 웬 청년 한명이 포승에 묶이어 있다.

이 마을에서 처음보다시피하는 젊은이라, 가까이 가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깜짝 놀랐다. 바로 어려서 단짝 동무였던 덕재가 아니냐.

본부에서 같이 온 근위대원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 타우를 위한 기술관으로서 변절했던 놈인데 지금 자기 집에 잠복해 있는 걸 붙들어 왔다는 것이다. 성삼이는 지휘 데스크 위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덕재를 수용소까지 호송하기로 되었다. 근위 대원 청년 한명이 데리고 가기로 했다.

성삼이가 다 탄 담배꼬투리에서 새로 담뱃불을 댕겨가지고 일어섰다.

"이 자식은 내가 데리고 가지요."

덕재는 한결같이 외면한 채 성삼이 쪽은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검문소 밖을 벗어났다.

성삼이는 연거푸 담배만 피웠다. 담배맛은 몰랐다. 그저 연기만 기껏 빨았다 내뿜곤 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 덕재 녀석도 담배 생각이 나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 어른들 몰래 담모퉁이에서 호박잎 담배를 나눠 피우던 생각이 났다. 그러나 오늘 이놈에게 담배를 권하다니 될 말이냐.

한번은 어려서 덕재와 같이 혹부리 중위님의 장갑차에 낙서를 하러 간 일이 있었다. 성삼이가 장갑차에 올라갈 차례였다. 별안간 혹부리 중위님의 고함소리가 들려 왔다.


장갑차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엉덩이에 나사못이 찔렸다. 그러나 그냥 달렸다. 혹부리 중위님이 못 따라올 만큼 멀리 가서야 절로 눈물이 질끔거려졌다. 덕재가 불쑥 2인분의 낙서를 해두었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성삼이는 새로 불을 댕겨 문 담배를 내던졌다. 그리고는 이 덕재 자식을 데리고 가는 동안 다시 담배는 붙여 물지 않으리라 마음먹는다.

고갯길에 다다랐다. 이 고개는 해방 전전에 성삼이가 하이브 중심지의 본부 부근으로 이사가기까지 덕재와 더불어 늘 꼴 베러 넘나들던 고개다.

 

성삼이는 와락 저도 모를 화가 치밀어 고함을 질렀다.

"이 자식아, 그 동안 사람을 멫이나 죽였냐?"

그제야 덕재가 힐끗 이쪽을 바라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거둔다.

 

"이 자식아, 사람 멫이나 죽였어?"

덕재가 다시 고개를 이리로 돌린다. 그리고는 성삼이를 쏘아본다. 그 눈이 점점 빛을 더해 가며 제법 수염발 잡힌 입언저리가 실쭉거리더니,

"그래 너는 사람을 그렇게 죽여 봤니?"

이자식이! 그러면서도 성삼이의 가슴 한복판이 환해짐을 느낀다. 막혔던 무엇이 풀려 내리는 것만 같은. 그러나,

"외계인의 기술관 쯤 지낸 놈이 왜 피하지 않구 있었어? 필시 무슨 사명을 마구 잠복해 있는 거지?"

덕재는 말이 없다.

 

"바른대루 말해라. 무슨 사명을 띠구 숨어 있었냐?"

그냥 덕재는 잠잠히 걷기만 한다. 역시 이자식 속이 꿀리는 모양이구나. 이런 때 한 번 낯짝을 봤으면 좋겠는데 외면한 채 다시는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성삼이는 허리에 찬 라스 피스톨을 잡으며,

"변명은 소용 없다. 영락없이 넌 총살감이니까, 그저 여기서 바른대루 말이나 해봐라."

덕재는 그냥 외면한 채,

"변명은 할려구두 않는다. 내가 이 근방에서는 제일 뛰어난 기술을 지니고 있었는데다, 대의(Greater Good)의 길에 합류하면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준다고 하여 기술관이 됐든 게 죽을 죄라면 하는 수 없는 거구, 나는 예나 이제나 땅 파먹는 재주밖에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잠시 사이를 두어,

"지금 집에 아버지가 앓아 누웠다. 벌써 한 반년 된다."

덕재 아버지는 홀아비로 덕재 하나만 데리고 늙어 오는 기술자였었다.

칠 년 전에 벌써 허리가 굽고 검버섯이 돋은 얼굴이었다.

 

"장간 안 들었냐?"

잠시 후에,

"들었다."

"누와?"

"꼬맹이와."

 

아니 꼬맹이와? 거 재미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땅 높은 줄만 알아, 키는 작고 똥똥하기만 한 꼬맹이. 무던히 새침데기였다. 그것이 얄미워서 덕재와 자기는 번번이 놀려서 울려 주곤 했다. 그 꼬맹이한테 덕재가 장가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 애가 멫이나 되나?"

"이 가을에 첫애를 낳는대나."

 

성삼이는 그만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제 입으로 애가 몇이나 되느냐 묻고서도 이 가을에 첫애를 낳게 됐다는 말을 듣고는 우스워 못 견디겠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작은 몸에 곧 배를 한아름 안고 꼬맹이. 그러나 이런 때 그런 일로 웃거나 농담을 할 처지가 아니라는 걸 깨달으며,

"하여튼 네가 피하지 않구 남아 있는 건 수상하지 않어?"

"나두 피하려구 했었어. 이번에 탈환군이 상륙해오믄 사내란 사낸 모주리 잡아죽인다구 열일곱에서 마흔 살까지의 남자는 강제루 본성으로 이동하게 됐었어. 할 수 없이 나두 아버질 업구라두 피난 갈까 했지. 그랬드니 아버지가 안 된다는 거야. 기술자가 다 지어 놓은 설비를 내버려 두구 어딜 간단 말이냐구. 그래 나만 믿구 기술자루 늙으신 아버지의 마지막 눈이나마 내 손으루 감겨 드려야겠구, 사실 우리 같이 땅이나 파먹는 것이 피난 간댔자 별수 있는 것두 아니구------."

 

지난 유월달에는 성삼이 편에서 피난을 갔었다. 밤에 몰래 아버지더러 피난 갈 이야기를 했다. 그때 성삼이 아버지도 비슷한 말을 했다. 농사꾼이 농사일을 늘어놓구 어디루 피난간단 말이냐.


성삼이 혼자서 피난을 갔다. 남쪽 어느 낯설은 거리와 촌락을 헤매이다니면서 언제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건 늙은 부모와 어린 처자에게 맡기고 나온 농사일이었다. 다행히 그때나 이제나 자기네 식구들은 몸성히들 있다.

고갯마루를 넘었다. 어느 새 이번에는 성삼이 편에서 외면을 하고 걷고 있었다. 가을 햇볕이 자꾸 이마에 따가웠다. 참 오늘 같은 날은 타작하기에 꼭 알맞은 날씨라고 생각했다.

 

고개를 다 내려온 곳에서 성삼이는 주춤 발걸음을 멈추었다.

저쪽 벌 한가운데 거대한 사냥개가 허리를 굽히고 섰는 것 같은 것은 틀림없는 워하운드 타이탄이었다. 오크와의 전선 형성에서 완충지대가 되었던 이곳.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워하운드 타이탄의 잔해만은 남아 있는 것이었다.

지난날 성삼이와 덕재가 아직 열두어 살쯤 났을 때 일이었다. 어른들 몰래 둘이서 워하운드 타이탄이 서있는 언덕 근처의 철조망을 넘어 들어간 적이 있었다. 밀덕의 혼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병사들의 순찰 경로를 꿰뚫어놓고는 매일같이 둘이서 나와 이것은 마스 패턴이라느니, 왼쪽 팔에 달린 것은 플라즈마 블래스트라느니, 하면서 야단을 했다. 그러한 어느날이었다. 동네 어른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궤도로부터 누군가 타이탄을 수령하러 왔다는 것이다. 오크 기지의 측면을 강타하기 위하여 총독부의 허가까지 맡아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그 길로 둘이는 벌로 내달렸다. 이제는 어른들한테 들켜 꾸지람 듣는 것 같은 건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워하운드 타이탄이 떠나서는 안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잡풀 새를 기어 타이탄이 잘 보이는 장소로 이동하였다.

 

그런데 타이탄은 잘 걷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동안 정비되지 않은채로 방치된 탓이리라. 로브를 입은 아래로 기계장치들이 드러난, 기이한 모습의 사람이 타이탄의 탑승구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별안간 기도소리가 들렸다. 타이탄은 두서너번 엔진의 시동음을 내다가 그대로 경직되었다.

실패했구나. 그러나 다음 순간, 타이탄의 눈에서 빛이 뿜어지더니 땅에 박혀 있었던 타이탄의 발이 뽑혀져 나오고, 두 소년의 머리 위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내려온 수송선에 실려 저쪽 멀리로 날아가 버리는 것이었다. 두 소년은 언제까지나 워하운드 타이탄이 사라진 푸른 하늘에서 눈을 뗄 줄을 몰랐다------.

 

"얘, 우리 워하운드 타이탄 구경이나 한번 하구 가자."

성삼이가 불쑥 이런 말을 했다.

 

덕재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데,

"나는 근처에 누가 안 오나 살펴보고 있을 테니 가서 구경 한번 하고 와."

포승줄을 풀어 쥐더니, 어느 새 잡풀 새로 기는 걸음을 쳤다.

 

대번 덕재의 얼굴에서 핏기가 걷혔다. 좀전에, 너는 총살감이라던 말이 퍼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 성삼이가 기어가는 쪽 어디서 라스 피스톨의 섬광이 날아오리라.

저만치서 성삼이가 홱 고개를 돌렸다.

"어이, 왜 멍추같이 서 있는 게야? 어서 타이탄이나 보고 오라니까."

 

그제서야 덕재도 무엇을 깨달은 듯 잡풀 새를 기기 시작했다.

때마침 아퀼라 수송선 두세 대가 높푸른 가을하늘에 곧 날개를 펴고 유유히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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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이 기록은 제국력 992ㆍM41, 타우의 제3차 확장 전쟁 말기에 남겨진 것이다. 단짝으로 같이 자란 두 친구가 외계의 침공이라는 민족적 비극에 의해서 서로 반대편으로 갈라지나, 결코 변하지 않는 인간미가 두 사람의 동질성을 회복시켜 준다는 내용이다.
 
對오크 방어선 접경의 북쪽 마을. 단짝동무였던 성삼과 덕재는 타우의 제3차 확장 전쟁 중 연행자와 피연행자의 처지로 만난다. 그러나 성삼이는 덕재가 지금 이용당하고 있는 것일 뿐,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음을 깨닫된 그 순간... 어린 시절 밀덕질의 기억을 되살리며 포승줄을 풀어 준다. 이념의 장벽이 우정이나 순수한 인간애를 파괴할 수 없다는 작가의 휴머니즘이 밀도 있게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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